탄화점을 넘겨도 더 잘 붙었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한 뒤로 쓴 글이 전부 주식 이야기였습니다.

오늘은 그냥 요즘 하던 생각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정리된 결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알려드릴 만한 내용도 아닙니다. 그래서 잡담 쪽에 넣습니다.

며칠 전부터 계속 맴돌던 생각이 있었는데, 적어두지 않으면 계속 맴돌 것 같더라고요.


저는 아는 척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먼저 이 얘기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글 쓰는 걸 좋아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아는 척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뭘 좀 알게 되면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싶어서 근질거립니다. 이 블로그도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쓸 거면 이걸로 돈도 좀 벌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광고를 붙이려고 준비하는 중입니다.

이걸 굳이 앞에 적는 이유는, 오늘 할 이야기가 결국 잘 모르면서 확신을 파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입니다.

남 얘기를 하려면 제가 어디 서 있는지부터 말하는 게 맞겠죠. 저도 이득을 바라고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검색해도 안 나오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저는 제조업에서 부품 설계와 개발 일을 합니다.

이 일을 하면서 느낀 게 하나 있습니다. 웬만한 건 이제 검색으로 다 나옵니다. 소재 물성값이든 공정 원리든 용어 정의든, AI한테 물어보면 정리까지 깔끔하게 해줍니다.

그런데 정작 현업에서 중요한 건 잘 안 나옵니다.

어떤 조건이 실제로 결정적인지, 왜 굳이 이 방식이 표준이 됐는지, 이 결정이 나중에 어디서 문제를 만드는지. 이런 건 자료에 안 적혀 있습니다. 적을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닌 것 같고요.

몇 년 굴러야 겨우 감이 잡히는 영역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인터넷에서 어떤 분야 얘기를 자신 있게 하는 글을 보면 좀 복잡한 기분이 듭니다. 제가 아는 분야에 대해 그런 글을 보면 특히 그렇고요.

이상하게도 아는 게 적을수록 정리가 더 깔끔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깔끔함이 확신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정보가 의견이 되고, 의견이 주장이 되고, 어느새 원래 얘기랑 다른 게 되어 있더라고요.


알아도 틀릴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쓰면 결국 “전문가 말을 들으세요”가 되는데, 그건 또 아닙니다.

부품을 열로 녹여서 붙이는 열융착이라는 공정이 있습니다. 제가 다루던 소재는 탄화점이 250도였습니다.

그 온도를 넘기면 소재가 타버립니다. 그러니 250도 아래에서 융착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론적으로 이상할 게 없는 판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250도를 넘긴 조건에서 더 잘 붙었습니다.

처음에는 뭘 잘못 쟀나 싶었습니다. 그래서 실제 온도를 다시 측정해봤습니다. 소재 물성치도 다시 확인했습니다.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가열 초반에 표면 일부는 탄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열이 소재 안쪽으로 전달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융착부의 열 분포까지 같이 놓고 보면, 설정 온도가 탄화점을 넘어도 정작 붙는 자리가 겪는 조건은 다를 수 있겠더라고요.

그러니까 탄화점이 250도라는 값 자체는 틀린 게 아니었습니다. 틀린 건 그 숫자를 설정 온도에 그대로 갖다 붙인 저였습니다.

이론이 거짓이라 틀린 게 아니라, 그 이론을 어디에 적용할지를 잘못 본 겁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생각보다 자주 있습니다. 해석에서는 통과인데 실물에서 깨지고, 예측이랑 실측이 한참 벌어지고. 현업에 있는 사람도 결국 해봐야 아는 영역이 남아 있습니다.

탄화점이 250도라는 건 검색하면 3초 만에 나옵니다. 그 숫자를 설정 온도에 그대로 쓰면 안 된다는 건 검색해도 안 나옵니다.


그래서 뭘 붙잡아야 하나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검색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있고, 업계에 있어야 아는 것이 있고, 그 위에 아무도 모르는 자리가 또 있습니다. 정보를 아무리 쌓아도 마지막 자리는 그대로 남습니다.

그러면 답이 정보를 더 모으는 데 있는 건 아니겠구나 싶었습니다.

남의 이야기는 듣고 참고하되, 그것과 별개로 흔들리지 않는 자기 기준이 있어야겠다.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보로는 채워지지 않는 자리가 있으니까요.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바로 다음 질문이 걸렸습니다.


판정하는 건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흔들리지 말라니, 그거 그냥 고집 아닌가.

자기 기준이 틀렸는데도 붙잡고 있으면 그게 아집이지 무슨 소신입니까. 그래서 보통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좀 막혔습니다.

솔직히 저는 제가 아집인지 소신인지 판정하지 못합니다.

그건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고, 무엇보다 자기가 객관적이라고 믿는 순간 이미 객관적이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스스로 판정하려고 하면 계속 제자리를 돕니다.

그래서 판정하는 건 그냥 포기했습니다.

대신 누가 봐도 검증할 수 있는 데이터를 기준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생각해보니 구멍이 있었습니다. 데이터는 나중에 골라올 수 있으니까요. 내 결론에 맞는 숫자만 가져와도 그것 역시 데이터 기반 판단이라고 불립니다.

그래서 조건을 하나 더 붙였습니다. 무엇을 볼지 결과가 나오기 전에 정해두는 것.

이건 사실 회사에서 하는 방식 그대로입니다. 시험하기 전에 합격 기준을 먼저 문서로 확정합니다. 결과 보고 나서 기준을 조정하면 그건 시험이 아니라 변명이니까요.

열융착 얘기도 그렇습니다. 설정 온도만 보기로 했다면 융착부가 실제로 겪은 조건은 애초에 들여다볼 생각도 안 했을 겁니다. 뭘 측정할지 정하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판단이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무엇을 볼지 먼저 정하고, 그 결과가 저한테 불리하게 나와도 그대로 내놓는 것.

아집인지 소신인지는 그다음에 보시는 분들이 판단하면 됩니다. 제가 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마치며

쓰다 보니 결국 제 투자 방식 얘기랑 이어지네요.

미리 규칙을 정해두고 그대로 움직이는 것도, 검증해보니 제 방법이 더 나빴다는 결과를 그대로 올린 것도, 손절한 기록을 남긴 것도 같은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옳다는 걸 보여주려고 쓰는 게 아니라, 틀렸을 때 틀린 게 보이도록 쓰는 것.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제가 찾은 답은 이 정도입니다. 더 좋은 정보를 구하는 게 아니라, 틀렸을 때 틀린 줄 알 수 있게 해두는 것.

물론 이것도 그냥 제 생각입니다. 맞다고 우길 생각은 없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 버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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