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어디로 갈까요? 네 가지 가정.

지난 8월 22일 매매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미국채 금리가 이렇게 튀는데 나스닥은 사상 최고점 대비 3.6%밖에 안 빠졌다고요.

그 뒤로 며칠 더 밀렸습니다. 8월 24일 종가 기준 QQQ가 52주 최고가 대비 -5.7%네요.

그런데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고작 5% 빠진 시장인데 커뮤니티 분위기는 훨씬 나쁩니다. 제 계좌 화면도 그렇고요. 저는 이 괴리 안에 답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 나름의 판단 틀을 꺼내서, 미국 증시 전망을 네 가지 그림으로 정리해봤습니다. 먼저 말씀드리면 저는 시장을 못 맞힙니다. 이 글은 예측이 아니라 “어떤 조건이 켜지면 어느 그림으로 가는지”를 적어두는 작업입니다.


1. 제가 시장을 보는 세 가지 조건

저는 주가를 이렇게 쪼개서 봅니다.

시장 판단의 세 가지 조건 — 바닥은 경기와 실적, 천장은 금리와 유동성, 기울기는 성장성

바닥은 실적이 정합니다. 실적이 좋으면 아무리 빠져도 어딘가에서 받쳐지거든요.

천장은 금리가 정합니다. 금리가 높으면 같은 실적에도 사람들이 지불하려는 배수(PER)가 낮아집니다. 그리고 금리가 흔들리면 천장 자체가 흔들리니까 변동성이 커지고요.

기울기는 성장성이 정합니다. 바닥과 천장 사이를 얼마나 빠르게 올라가느냐죠. 이게 서사가 되면 천장을 뚫기도 하는데, 그게 버블입니다.

이 셋이 지금 각각 어떤 상태인지부터 보겠습니다.


2. 지금 세 조건은 어떤 상태인가

실적: 놀랄 만큼 좋습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가야겠습니다. FactSet 집계를 보니 지금 실적은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역대급이더라구요.

항목2026년 2분기참고
S&P500 EPS 증가율+50.4%블렌디드 기준
매출 증가율+15.0%2021년 4분기 이후 최고
EPS 예상 상회 비율86%5년 평균 78%
서프라이즈 폭+29.2%2008년 집계 이래 최고

서프라이즈 폭 29.2%는 FactSet이 2008년부터 집계한 이래 최고치입니다. 3분기 +27.4%, 4분기 +25.2%, 연간 +30.0% 전망이고요.

그러니까 지금은 “실적이 무너져서 빠지는 장”이 아닙니다. 이건 확실히 해두고 갑시다.

경기: 그런데 경기가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제가 처음엔 대충 넘어갔던 걸 짚어야겠습니다.

실적이 좋다는 말과 경기가 좋다는 말은 다른 말입니다.

항목수치
실질 GDP 성장률1분기 2.1% → 2분기 1.5%
소비지출+3.2% (내구재 +6.9%)
7월 비농업 고용마이너스
7월 소매판매마이너스
실업률4.1% (6월 4.2%)
경제활동참가율61.4%, 2021년 초 이후 최저
고용률58.9%, 2021년 9월 이후 최저

실업률만 보면 4.1%로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뜯어보면 좀 다릅니다.

실업률이 내려간 게 취업이 늘어서가 아니라 구직을 포기한 사람이 늘어서거든요. 경제활동참가율과 고용률이 동시에 몇 년 만의 최저라는 게 그 뜻입니다. 7월엔 고용도 소매판매도 마이너스였고, GDP는 2.1%에서 1.5%로 내려앉았습니다.

경기는 나쁘진 않은데 확실히 식어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실적은 폭발하고 있고요.

S&P500 분기 EPS 증가율과 미국 실질 GDP 성장률 비교 — 실적은 폭발하고 경기는 식어가는 중

이 괴리가 왜 생길까요. 제 생각엔 지금 이익 증가분의 상당 부분이 경기가 아니라 AI 자본지출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캐펙스는 경기 사이클이 아니라 투자 사이클입니다. 소비가 좀 식어도 하이퍼스케일러가 데이터센터를 계속 지으면 반도체와 전력 회사 실적은 사상 최고를 찍습니다.

이게 제 프레임에서 왜 중요하냐면요.

저는 앞에서 “바닥을 정하는 건 실적”이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그 실적이 경기가 아니라 캐펙스에 얹혀 있다면 바닥의 재질이 다릅니다. 경기가 만든 바닥은 두껍고, 캐펙스가 만든 바닥은 캐펙스가 멈추면 같이 사라지거든요.

정확히 쓰면 이렇게 되겠네요. 지금 바닥은 높지만, 그 바닥이 몇 개 기업의 투자 결정 위에 서 있습니다.

금리와 유동성: 여기가 문제입니다

항목수치
미 10년물 국채금리4.70% (20개월 최고 4.75% 터치)
미 30년물 국채금리5.24%
기준금리3.50~3.75%, 5회 연속 동결
7월 CPI3.4% (5월 4.2% → 6월 3.5% → 7월 3.4%)
근원 CPI2.5%
9월 인상 확률약 30~33%

이 표에서 제일 이상한 걸 발견하셨나요.

물가는 내려가고 있는데 장기금리는 오르고 있습니다.

2026년 미국 CPI 전년비와 10년물 국채금리 추이 — 물가는 내려가는데 금리는 오르는 엇갈림

교과서대로면 이럴 수 없죠. 물가가 잡히면 금리도 내려가야 하니까요. 그런데 5월 4.2%였던 CPI가 7월 3.4%까지 왔는데도 10년물은 20개월 최고치입니다.

이유는 물가가 아니라 공급입니다.

미국 국가부채가 40조 달러를 넘었고, 재무부는 국채를 계속 찍어냅니다. 8월 19일에 장기채 바이백 규모를 두 배로 늘리면서 진화에 나섰거든요. 금리가 잠깐 내려가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에 다우는 700포인트 넘게 빠졌고, 다음 날 애널리스트들 평가는 “효과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시장이 “그 정도로는 안 된다”고 답한 셈이죠.

이게 왜 무서운 얘기냐면요. 물가 때문에 오른 금리는 물가가 잡히면 내려갑니다. 그런데 공급 때문에 오른 금리는 연준이 못 고칩니다.

여기서 제 반성문을 하나 쓰겠습니다.

지난 금리와 주가 글에서 저는 연준이 금리를 추가로 올리긴 어렵다고 썼습니다. 미국 부채 부담이 크고, AI 패권 경쟁 중에 금리를 올려 발목을 잡진 않을 거라는 논리였고요. 그리고 그 글에 제 판단을 폐기할 반증 조건 세 가지를 미리 적어뒀습니다.

반증 조건현재상태
유가 100달러 이상 수개월 지속브렌트 $89, 전년비 +33.7%미충족, 접근 중
CPI가 재차 상승 추세로 전환5월 4.2% → 7월 3.4%미충족
연준 인사 발언이 ‘인상 가능’으로 전환7월 FOMC에서 3명이 인상 반대표충족

세 개 중 하나가 켜졌습니다.

제 전망이 틀렸다고 선언할 단계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맞다고 우길 단계도 아니고요. 일단 기록해둡니다.

성장성: 시장이 판단을 못 하고 있습니다

AI 캐펙스는 계속 늘어납니다. 하이퍼스케일러 2026년 자본지출 계획이 약 7,000억 달러, 무디스는 6대 기업의 2027년 지출을 약 1조 달러로 봅니다.

그럼 돈은 벌리고 있느냐. 놀랍게도 벌리고 있습니다. 앤트로픽 연환산 매출(ARR)이 7월 기준 650억 달러까지 올라왔거든요.

매출이 없는 게 아닙니다. 매출 증가 속도보다 투자 속도가 훨씬 빠른 거죠.

AI 순환거래 글에서 정리했듯 5대 하이퍼스케일러의 미래 지급 의무는 1조 6,500억 달러입니다. 그때 제 결론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과장”이었는데 지금도 같습니다. 칩은 실제로 만들어졌고 실제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그 수요의 상당 부분이 빌린 돈에서 나오죠.

그리고 금리가 높다는 건 그 빌린 돈이 비싸진다는 뜻입니다.

지금 두 번째 조건과 세 번째 조건이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시장의 진짜 모습

이 그림 하나가 제일 중요합니다.

52주 최고가 대비 하락률 — QQQ -5.7%, SMH -18.6%, 마이크론 -27.5%

지수는 멀쩡한데 안이 갈라지고 있습니다.

커뮤니티 분위기가 지수보다 나쁜 이유가 이겁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들고 있는 건 QQQ가 아니라 반도체거든요.


3. PER이 낮은 게 안심할 근거가 맞을까요?

여기서 제가 글을 쓰다가 스스로 발목 잡힌 지점을 공유하겠습니다.

원래 저는 “지금은 닷컴 때와 다르다, PER이 그때만큼 안 비싸다”는 논리를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쓰다 보니 좀 찔리더라구요. 그 논리가 생각보다 약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먼저 이 숫자를 보셔야 합니다

S&P500 안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 — 10년 전 2%, 닷컴버블 정점 8% 미만, 지금 18%

닷컴 정점의 두 배가 넘습니다.

심지어 가치주 지수의 1위 종목이 구글이고 3위가 마이크론입니다. 신흥국 지수는 약 27%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TSMC에서 나오고요. 분산투자를 한다고 생각해도 실제로는 AI 칩 수요라는 한 가지 테마에 겹겹이 노출돼 있는 셈입니다.

그 반도체가 지금 어떤 상태냐면

메모리 가격이 미쳐 있습니다.

2026년 1분기 메모리 계약가격 상승률 — PC DRAM +105~110%, 범용 DRAM +90~95%, NAND +55~60%

소비자용 32GB DDR5 키트는 $110~140에서 $392가 됐습니다.

HBM이 DRAM 웨이퍼를 3배씩 잡아먹으면서 범용 메모리 라인이 통째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갑니다. HBM 웨이퍼 투입 비중은 2025년 말 18%에서 2027년 말 30%까지 갈 전망이고, TrendForce는 2027년 HBM 계약가가 “수 배” 오를 거라고 보고 있고요.

그럼 실적이 어떻게 되느냐. 마이크론 최근 12개월 숫자입니다.

항목수치
매출$90.27B (+167%)
순이익$50.47B (+711%)
EPS$44.31 (+706%)

그래서 PER이 이렇게 됩니다

선행 PER 비교 — S&P500 20.0배, 엔비디아 20.8배, 마이크론 6.3배, 삼성전자 4.4배, SK하이닉스 4.2배

마이크론 선행 PER 6.3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아예 4배대입니다.

지수 PER은 결국 구성 종목 PER이 시총 가중으로 섞인 값이잖아요. 사상 최고 비중을 차지한 반도체가 사상 최저 수준의 PER을 달고 있으면, 지수 PER은 실제보다 싸 보입니다.

제가 “선행 20배니까 괜찮다”고 쓰려던 그 20배 안에, 정점 이익으로 계산된 6배짜리들이 큰 무게로 섞여 있는 겁니다.

사실 이건 제가 이미 썼던 얘기입니다

좀 부끄러운데요. 저는 이 얘기를 이미 메모리 3사 분석 글에서 썼습니다. 피터 린치 인용까지 해가면서요.

사이클 기업을 이익이 수년간 최고치를 찍고 PER이 가장 낮아졌을 때 사는 것은, 짧은 시간에 돈을 절반으로 만드는 검증된 방법이다. — 피터 린치

사이클 산업은 PER이 높을 때가 기회고 낮을 때가 함정입니다. 이익이 바닥일 때 PER이 높아 보이고, 정점일 때 낮아 보이니까요.

주가가 이익보다 먼저 움직여서 그렇습니다. 이익이 정점을 찍는 순간 주가는 이미 다음 다운사이클을 보고 내려가기 시작하거든요. 분자는 내려가는데 분모는 최고치니까 PER이 역사적 저점으로 보이는 착시가 생깁니다. 2018년 SK하이닉스가 PER 3배까지 갔다가 주가가 반토막 난 게 그 사례고요.

그걸 개별 종목 글에서는 써놓고, 지수를 볼 때는 똑같은 함정에 빠질 뻔했습니다.

개별주에 적용한 잣대를 지수에는 적용을 안 하고 있었던 거죠.

시장은 이미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증거가 있습니다.

마이크론 선행 PER 6.3배를 뒤집어 계산하면, EPS가 지금 수준에서 절반 넘게 빠져도 현재 주가가 정당화된다는 뜻입니다. 시장이 이미 이익 급감을 가격에 넣어놨다는 얘기죠.

주가도 그렇게 움직였고요. 마이크론 52주 최고가는 $1,255인데 지금은 $910입니다. 실적이 +711%인 회사가 고점 대비 27% 빠져 있습니다.

시장이 멍청해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지금 나오는 이익을 안 믿고 있는 겁니다.

반대편 얘기도 적어둡니다

물론 “이번엔 다르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근거가 없지도 않고요.

  • AI 서버는 기존 서버보다 DRAM을 8~10배 소비합니다. 수요의 성격 자체가 달라졌다는 거죠.
  • HBM은 제조 난도가 높아서 공급이 자연스럽게 제한됩니다.
  • 2027년 물량까지 이미 매진이고, 선금과 다년 계약이 걸려 있습니다. 과거처럼 재고가 한 번에 쏟아지는 구조가 아니라는 겁니다.

반대로 경계할 신호도 명확합니다. 2028년에 여러 신규 팹이 동시에 완공되고, 스마트폰(-12.9%)이나 PC(-11.3%) 같은 기존 수요처는 오히려 줄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번엔 다르다”는 말은 사이클 정점에서 항상 나왔던 말이기도 하고요.

저는 어느 쪽이 맞는지 모릅니다. 다만 이 글을 쓰면서 제 판단 하나는 바꿨습니다. 지수 PER 하나로 “닷컴이랑 다르다”고 결론 내리는 건 위험하다는 거요. 앞으로는 “반도체 빼고 보면 얼마인가”를 같이 보려고 합니다.


4. 가정 1 — 기나긴 횡보장

지수가 몇 년간 큰 방향 없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그림입니다. 폭락도 없고 신고가도 없고요.

실적이라는 바닥은 높은데 금리라는 천장이 안 올라가면 이렇게 됩니다. 지금 상태가 그대로 굳으면 이 그림이겠네요.

반대로 이 그림을 부정하는 근거는 사람 심리입니다. 성장 서사가 살아있으면 다들 못 참거든요. 옆에서 누가 AI로 돈 버는 걸 보면서 3년을 횡보로 버티는 시장은 흔치 않습니다.

제 체감 확률은 35%입니다. 가장 높게 봅니다.

그럼 얼마나 갈까요

가장 확률이 높다고 해놓고 기간을 안 쓰면 무책임한 것 같아서, 세 가지 각도로 재봤습니다.

첫째, 밸류에이션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입니다.

이 그림엔 좋은 점이 하나 있거든요. 주가가 제자리여도 실적이 늘면 PER은 저절로 내려갑니다.

FactSet 기준 S&P500 연간 EPS 전망은 2026년 +24.2%, 2027년 +17.4%입니다. 이 숫자를 그대로 넣고 주가만 묶어보면 이렇게 됩니다.

주가가 횡보할 때 S&P500 선행 PER 경로 — 지금 20.0배에서 1년 뒤 17.0배, 2년 뒤 15.2배

1년만 지나도 10년 평균(19.0배) 아래로 내려갑니다. 2년이면 15배 근처고요.

밸류에이션만 놓고 보면 1년에서 2년이면 풀린다는 뜻입니다.

둘째, 가장 최근 사례입니다.

나스닥 종합지수가 2021년 11월 19일에 16,057로 고점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다시 종가를 마감한 게 2024년 2월 29일이에요.

2년 3개월 걸렸습니다. 그때도 주가를 누른 건 실적이 아니라 금리였고요. 지금 상황과 원인이 같습니다.

셋째, 역사적인 대세 횡보장입니다.

이건 좀 무섭습니다.

기간지속
1905~192520년
1935~195015년
1965~198217년
1999~201213년

평균 16년입니다. 특히 1966~1982년은 배당을 다 받고도 물가를 감안하면 실질 수익률이 사실상 0이었습니다. 17년 동안요.

그런데 이 사례들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시작점의 밸류에이션이나 물가가 극단이었다는 겁니다.

1999년 시작 시점의 S&P500 선행 PER은 24.5배였습니다. 1966년부터는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이 뒤따랐고요. 지금은 선행 20.0배에 CPI 3.4%입니다. 좋은 상태는 아니지만 저 사례들과 같은 출발선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13~20년짜리 대세 횡보장 가능성은 낮게 봅니다.

제 추측은 1년 반에서 2년 반입니다

밸류에이션은 1~2년이면 풀리고, 원인이 가장 비슷한 최근 사례가 2년 3개월이었으니까요. 대세 횡보장 조건은 아직 아니라고 보고요.

물론 이건 근거를 붙인 추측이지 예측이 아닙니다. 그래서 언제 이 추측을 버릴지도 같이 적어둡니다.

조건
훨씬 짧아진다10년물이 4% 아래로 내려와 자리를 잡는 경우. 그러면 6개월 만에 끝날 수도 있습니다
훨씬 길어진다CPI가 다시 4% 위로 올라가 연준이 인상을 재개하거나, 메모리 사이클이 꺾여 지수 EPS가 역성장으로 도는 경우. 3~4년으로 늘어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기간 추정이 저한테 왜 중요하냐면요.

2년이라고 쓰면 짧아 보이는데, 막상 겪으면 꽤 깁니다. 티어1도 안 켜진 채로 현금이 계속 노는 시간이 그만큼 길어진다는 뜻이거든요.

제가 VR-R을 따로 시작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티어 시스템은 크게 빠져야 작동하는데, 횡보장은 크게 안 빠지면서 사람을 지치게 만들거든요. 어느 쪽이 오든 뭔가는 돌아가고 있어야 합니다.

사실 제가 F&G 티어 시스템을 만들 때부터 이 전제를 깔고 있었습니다. 나스닥 상승 기울기가 너무 가파르다, 한동안 횡보할 수 있다고요. 강세장 수익률을 조금 양보하는 대신 횡보장 리스크를 줄이는 선택이었습니다.


5. 가정 2 — 닷컴버블급 폭락

나스닥이 고점 대비 50% 이상 빠지고 회복에 수년이 걸리는 그림입니다.

세 조건이 동시에 무너져야 나옵니다. 성장 서사가 깨지고, 금리가 높아 자금 조달이 막히고, 그 결과 실적까지 훼손되는 순서죠.

제일 위험한 경로는 이렇습니다. 금리가 안 내려가니까 AI 인프라 조달이 막히고, 캐펙스가 꺾이고, 반도체와 전력 회사 실적이 무너지고, 그게 하이퍼스케일러 밸류에이션으로 번집니다. 닷컴 때 루슨트가 벤더파이낸싱으로 매출을 만들다 무너진 경로와 형태가 비슷하고요.

그런데 숫자를 보면 그때랑 많이 다릅니다. 후행과 선행을 같은 기준끼리 나란히 놓으면 이렇습니다.

2000년 3월 닷컴 정점2026년 8월 현재
나스닥100 후행 PER150~200배 (나스닥 추정)28.4~28.7배
나스닥100 선행 PER약 60배약 24배
S&P500 후행 PER28.3배24.8배
S&P500 선행 PER24.5배20.0배
흑자 기업 비율나스닥 기술주의 약 14%만 흑자대부분 흑자
대표 기업 실적적자 다수S&P500 EPS +50.4%
캐펙스 재원주식·부채 조달상당 부분 영업현금흐름

2000년 나스닥100 후행 PER은 나스닥이 직접 낸 자료의 추정값입니다. 1999년 말 실측이 104배였고, 2000년 말에는 113배였거든요. 그런데 2000년 말이면 주가가 이미 고점에서 반토막 난 뒤입니다. 주가가 반으로 깎이고도 PER이 113배였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정점에서는 150~200배였을 거라고 봅니다.

지금 나스닥100 후행 PER은 28배대입니다. 자릿수가 다릅니다.

그런데 이 표를 만들면서 좀 뜻밖이었던 게 하나 있습니다.

S&P500을 보시면요. 선행 PER이 24.5배에서 20.0배로, 후행은 28.3배에서 24.8배로 왔습니다. 겨우 15% 안팎 낮아진 겁니다.

닷컴 때 미쳤던 건 S&P500이 아니라 나스닥이었던 거죠. 그리고 지금 S&P500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버블 정점보다 15% 정도밖에 안 싼 상태고요. 이건 생각보다 안심되는 숫자가 아닙니다.

그래도 결정적인 차이는 남아 있습니다. 닷컴 때는 흑자 기업이 기술주의 14%뿐이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흑자거든요. 같은 폭락이 나오려면 지금 나오는 이익이 가짜여야 하는데, 저는 그렇게 보진 않습니다.

다만 3절에서 쓴 얘기가 여기 걸립니다. “지금 이익이 진짜”인 것과 “지금 이익이 지속 가능”한 건 다른 말이거든요. 반도체가 지수의 18%인 상태에서 메모리 사이클이 꺾이면, 이익이 가짜가 아니어도 지수 EPS는 크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제 체감 확률은 15%입니다.

처음엔 10%로 잡았다가 반도체 비중이랑 사이클 PER 문제를 정리하면서 올렸습니다.

참고로 제 매매 시스템 자체가 “닷컴급 -80%는 재현되지 않는다”는 대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이 전제가 틀리면 제 시스템도 같이 틀리는 거죠. 그래서 적어둡니다.


6. 가정 3 — 일시적 조정, 그 후 상승

지금이 바닥권이고 몇 달 안에 신고가로 가는 그림입니다.

이건 금리만 진정되면 됩니다. 실적은 이미 충분하고 성장 서사도 살아있으니까요.

솔직히 -5.7%는 조정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숫자잖아요. 이런 실적에 이 정도 하락이면 금리 하나만 풀려도 바로 재점화될 수 있습니다.

당장 이번 주에 방아쇠가 두 개 있고요.

일정날짜볼 것
엔비디아 실적8월 26일캐펙스 사이클이 살아있는지
잭슨홀, 워시 의장 첫 기조연설8월 28일인상 사이클이 일시정지인지 종료인지
FOMC9월 16일실제 결정

반대로 이 그림을 막는 건 아까 그 얘기입니다. 금리가 오르는 이유가 물가가 아니라 국채 공급이면, 연준이 비둘기가 되어도 장기금리는 안 내려옵니다. 재무부가 바이백을 두 배로 늘리고도 효과가 제한적이었던 게 그 증거고요.

제 체감 확률은 20%입니다.


7. 가정 4 — 소수만 급등하고, 나머지는 하락

지수는 버티거나 조금 오르는데, 그 상승분을 5~10개 종목이 다 만드는 그림입니다. 나머지는 계속 빠지고요.

여기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겁니다.

이 그림은 미래가 아니라 이미 진행 중입니다.

QQQ -5.7%, SMH -18.6%. 같은 시장 안에서 13%p가 벌어져 있습니다. 지수만 보면 “별일 없네” 싶은데, 안에서는 이미 한쪽이 곰장에 들어가 있어요. 실적 +711%인 마이크론이 고점 대비 -27%인 것도 같은 얘기고요.

왜 이렇게 되느냐. 돈값이 비싸지면 자기 돈으로 투자할 수 있는 회사만 살아남기 때문입니다. 빌려서 투자하는 쪽은 금리가 오르는 만큼 목이 졸리거든요.

제가 AI 순환거래 글에서 알파벳을 계속 들고 가겠다고 쓴 이유도 같았습니다. 이 논쟁의 중심은 빌린 돈으로 크는 쪽이고, 알파벳은 본업이 벌어주는 돈으로 투자하는 쪽이라고요.

이 그림의 함정은 따로 있습니다. 쏠림이 극단으로 가면, 그 소수가 흔들릴 때 지수가 통째로 갑니다. 그러니까 그림 4는 그림 1이나 그림 2로 가는 중간역일 수 있어요. 네 그림 중에 유일하게 다른 그림과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제 체감 확률은 30%입니다. 이미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100%지만, 이게 결말까지 이어질 확률로는 30%로 봅니다.


8. 미국 증시 전망 네 가지를 한 표로

미국 증시 전망 네 가지 시나리오별 체감 확률 — 횡보장 35%, 소수만 급등 30%, 일시 조정 후 상승 20%, 닷컴급 폭락 15%
그림핵심 조건제 체감 확률
1. 기나긴 횡보장실적은 좋은데 금리가 안 내려옴35%
2. 닷컴급 폭락조달 경색으로 캐펙스가 무너지고 실적까지 훼손15%
3. 일시 조정 후 상승금리만 진정되면 됨20%
4. 소수만 급등, 나머지 하락이미 진행 중, 다른 그림의 중간역30%

이 확률은 모델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그냥 제 감이에요. 다음 달에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 표를 만들면서 얻은 게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네 그림 중 세 개가 금리에서 갈립니다. 경기는 식어가지만 아직 안 무너졌고, 성장 서사도 아직 살아있거든요. 지금 시장의 운명을 쥔 건 물가도 실적도 아니고 국채 시장입니다.

둘째, 제가 안심의 근거로 삼던 “PER 20배”가 생각보다 든든하지 않습니다. 사이클 정점 이익으로 계산된 PER은 원래 싸 보이니까요.

그래서 앞으로 볼 지표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 미 10년물·30년물 금리 방향, 특히 5% 위에서 자리를 잡는지
  • 국채 입찰 결과와 재무부 발행 계획
  • 하이퍼스케일러 캐펙스 가이던스, 늘리는지 말을 바꾸는지
  • DRAM·HBM 계약가격 방향. 오르다 멈추는 순간이 신호입니다
  • 반도체를 제외한 S&P500 이익 증가율
  • QQQ와 SMH의 낙폭 격차가 벌어지는지 좁혀지는지

마치며

이 글을 쓰면서 제일 크게 느낀 건, 제가 예측을 안 해도 되는 구조를 만들어둔 게 다행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네 그림 중 어디로 가든 제가 할 일은 같거든요. F&G 티어 시스템은 아직 티어1도 안 켜졌으니 그냥 기다립니다. VR-R은 2주마다 목표선을 다시 그릴 뿐이고요.

지난 매매일기에 쓴 문장을 그대로 다시 씁니다.

어느 쪽이든 제가 할 일은 같습니다. 예측이 맞든 틀리든 티어 조건이 켜지면 사고, 안 켜지면 안 삽니다.

하락장 멘탈관리 글에 인용했던 문장도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비관론자처럼 저축하고, 낙관론자처럼 투자하라. — 모건 하우절

지금 제 계좌 현금 비중이 높은 건 비관해서가 아닙니다. 네 그림 중 어느 게 와도 대응하려면 탄약이 필요해서예요. 그림 2가 오면 사야 하고, 그림 3이 오면 안 사도 되니까요.

틀려도 되는 상태를 만들어두는 게 제가 하는 유일한 예측입니다.

이 글은 투자 권유가 아니라 제 개인적인 판단 기록입니다. 확률도 근거도 전부 제 주관이고요. 몇 달 뒤에 다시 읽으면서 뭐가 틀렸는지 복기하려고 남겨둡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잘 버텨봅시다.


참고 자료

이 글에 쓴 숫자의 출처입니다. 직접 확인한 것만 적었고, 시세 기준일은 2026년 8월 24~25일입니다.

실적·밸류에이션·경기

금리와 국채

AI 캐펙스와 반도체 사이클

  • 하이퍼스케일러 캐펙스, 무디스의 1조 달러 전망, 반도체 패닉의 배경 — TMT Finance, Fortune
  • 앤트로픽 연환산 매출 650억 달러 — CNBC
  • S&P500 내 반도체 비중 18%와 닷컴 정점 비교 — 24/7 Wall St.
  • HBM 공급과 2027년 계약가 전망 — TrendForce
  • 사이클 종목의 낮은 PER 논쟁, 강세·약세 양쪽 근거 — Trades & Gains

닷컴버블 비교와 횡보장 사례

시세와 일정

  • 종목별 후행·선행 PER, 실적, 52주 최고가 — StockAnalysis. 8월 24~25일 실시간 시세는 토스증권 오픈 API로 직접 조회했습니다.
  • 잭슨홀 일정과 엔비디아 실적 발표일 — Regards of Wallst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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